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 생장피데포르(St. Jean Pied de Port)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7㎞ 순례길로 다 걸으려면 보통 한달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전체 807KM 일정
지난 여름 도서관 여행섹션에서 무심코 손이 닿은 산티아고 여행서에서 나도 걷고 싶다는 '망'이 생겼고 김나진의 라디오 여행프로그램에서 들었던 김순진씨의 '순진한 걸음, 느리게 걸은 산티아고 길' 편은 그 '망'에 하나의 '망'을 더 올렸고 카톨릭 신자(세례명 요아킴)인 나는 그 순례길을 걸으며 야고보의 마음과 일치하고 싶은 '순망'이 자리잡았다.
원래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야고보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은길로 유래했고 현재는 순례길의 종착점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이 있고 이곳은 야고보 성인이 안면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평소에도 하루에 워킹으로 10-20KM정도는 쉽게 걸어서 되도록 많은 경유지를 잡으려 했지만 수아가 이 길은 빨리 주파하려 걷는 길이 아니라 오전에 출발해서 다음 포스트까지 자연과 함께 걷고 도착해서 그 지역을 관광하고 잠자리에 들고 그리고 일찍 일어나 다시 걷는 길이라 했다. 수아가 전체 일정을 고려해서 13일을 잡고 산티아고 길은 12일 걷고 13일째는 산티아고를 관광하고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도록 현실적이고 편안하게 나를 가이드해주었다 : )
하루하루 걸으며 싸고 질좋은 스페인 와인을 맘껏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많이된다 ^^
추가 글로 김순진씨가 '기독교한국루터회 2008 년 10 월호 회보'에 게재한 "산티아고를 향하는 순진한 걸음" 을 덧붙인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스페인 북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별이 내리는 들판 산티아고)'라는 곳까지 걸어가는 길입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러 '세상 끝까지' 걸어갔던 바로 그 길. 천 년 전부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기독교 3대 성지로 유명한 순례길이었는데 어느 순간 순례자들이 줄어들어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책을 쓰면서 다시 유명해지고 이후에 이 길 자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순례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전 유럽에서 산티아고로 오는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데,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걷는 길은 까미노 프란세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서부터 출발하는 800km 구간입니다. 이 길 중간 중간에 있는 순례자 사무소에선 '성지 순례'와 '명상'의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순례자용 여권을 발급해주고 순례자들은 지나는 마을마다 이 여권에 도장을 받아 그날 그날 걸어온 길을 기록합니다. 이 여권이 있어야 순례자용 숙소 '알베르게'에서 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여권에 찍힌 도장으로 100km 이상 걸었다는 것이 증명되면 산티아고에 있는 순례자 협회에서 '순례 완주 증명서'를 발급해 줍니다.
올해 초, 텔레비전에서 이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 몇 편이 방송되면서 한국인들 사이에도 이 길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대형서점 곳곳 이 순례의 길에 대한 책들이 쌓여가고, 여행사 상품으로도 출시된 이 길. 그저 관심 속에서 동경을 하던 중,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다녀온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루 평균 20-30km 정도 걸으면 한 달 남짓 걸리는 그 길을 석 달 가까이 초절정 느림보로 걸었던 그 사람의 여행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생생한 사진과 함께 그녀의 ‘순진한 걸음’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담아 봅니다.
<편집자 주>
이 길을 처음 알게 된 건, 오래 전 <연금술사>라는 매혹적인 책을 만났을 때다. 아직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몹시도 중요한 비밀을 엿본 것만 같았다.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난 양치기 산티아고 이야기. 얼마 후, 목동이 걸었던 그 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 저 길을 걸어 보았으면….막연한 꿈을 마음 밭에 은밀하게 심었다.
여러 해가 흘렀고, 내가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을 즈음, 그 무렵 나는 소원하던 인생의 스승을 만났고 우연히 그분과 '산티아고의 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길에 대한 꿈이 다시 살아났지만 웃어넘겼다.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게 한쪽 발목이 불편해서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열 몇 살 이후로는 달리기를 해본 적도 없고, 오래 걷거나 서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녀 보았지만 치료법은 커녕 통증의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통증이 오면 견디면서, 조금 덜 고통스럽도록 평소에 조심하며, 사는 데까지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다니!
떠나기로 마음먹고 나니까 준비할 게 많아졌다. 등산을 해본 적이 없어 등산화나 가벼운 배낭도, 등산용 점퍼도 하나 가진 것이 없었다. 뭣보다 시급한 건 등산화였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대부분이 자갈길이라고 들었다. 비가 내리면 온통 진창으로 변하기도 하고, 소똥이나 양똥을 즈려밟고 가는 길도 많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의 경험에 비추어 단연코 바닥이 두꺼운 경등산화가 제일 적합해 보였다. 그러나 손쉬운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 결론이 내게까지 해당되진 않았다. 내가 아픈 부위는 발목, 정확하게 복숭아 뼈 뒤쪽 아킬레스건 부위였기 때문인데 대부분 편한 신발들은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 뒤축이 아킬레스건에 닿도록 만들어졌다. 등산화나 트레킹화, 심지어 에어가 달린 운동화까지도 아픈 발목을 자극하지 않는 신발이 없었다. 여러 날 신발을 찾아 헤매던 나는 점점 풀이 죽어갔다.
편한 신발 하나 마음놓고 살 수 없는 내가 어떻게 그 먼 길을 걸어간단 말인가, 막막하고 아득하고, 어쩐지 누군가 막 원망스러워졌다. 사람들은 팔자좋게 세월아 네월아 여행가는 나를 부러워하고 더러 시샘도 했지만 신발 하나 찾지 못해 완전히 절망한 내 속을 버선목처럼 뒤집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기를 여러 날, 역시 선생님과 대화하던 중에 어쩌면 신발이나 가방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 때문에 더 못가겠으면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면 된다, 적어도 나는 800km를 완주해야 한다거나, 하루에 2-30km씩 주파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으니까. 선생님 말씀처럼, 산티아고는 거기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도 있는 거니까.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내 속도대로 느릿느릿 실컷 산보하다 온다고 치자.
문득 이 여행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길이 나를 초대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다가왔다.
나를 초대한 그 길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아서 다 준비하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나는 그냥 마음 편하게, 고마워하면서 기다리면 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밤마다 계속되는 통증도, 불면증도, 하루 한 끼 소화하기 힘든 위장도 걱정되지 않았다. 체력도, 언어도, 준비하지 못했다고 불안해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포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나 자신과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을 그냥 내어맡겼다. 나를 그리로 부른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길 끝에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했다.
1. 표지 (2008.6.14 아르카Arca가는 길)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은 이 노란 화살표와 조가비를 따라 간다. 지도 하나 나침반 하나 없어도 이 표지들만 잘 따라가면 산티아고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길에 집중하지 않으면 표지를 놓쳐 길을 잃는 경우도 생겨난다. 맛있는 붕어빵을 닮은 것 같기도 한 조가비와 노란 화살표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고맙고 반가운 길동무다. 분명 내 삶에도 이런 표지들이 도처에 있을 텐데 나는 지금 제대로 표지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가끔씩 궁금해진다.
2. 새벽길 (2008.4.13 라라소아냐Larrasona)
이른 새벽, 순례자들은 땅 위에 내린 첫 이슬을 밟고 길을 떠난다. 새벽에 길 떠나는 날은 대개 빈속이다. 순례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빈속으로 떠나는 새벽길이 문득 서러워졌다.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절절한 배고픔에 눈물이 흘렀다. 그때 뜬금없이 어느 우간다 어린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온종일 빵 한 쪽 못 먹고 이보다 먼 길을 물 길으러 다니는 아이의 말간 눈망울이 떠오르는 순간 내 배고픔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내 설움 때문인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통곡하며 걸어갔던 새벽길.
3. 내 아버지의 집 (2008.4.29 토산토스Tosantos)
순례자들이 머무르는 숙소를 알베르게Albergue라고 부른다. 어떤 알베르게에서는 돈을 받지 않고 순례자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아픈 데를 치료해주기도 한다. 사진 속의 노란 집은 토산토스Tosantos라는 곳에 있는 작은 알베르게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얇은 매트 한 장을 놓고 자야하는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경험한 환대는 하늘나라의 것이었다. 아픈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손길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만 머무는 것이 원칙인 알베르게에 혹시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염려하고 있는데 내 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버지 집이다. 편히 쉬어라.' 이곳에서 사흘을 푹 쉬었다. 내 아버지 집에서처럼 편하게.
4. 작은 제단 (2008.4.29 토산토스 알베르게 다락방 기도실)
토산토스 알베르게 다락에는 작은 기도실이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순례자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기도했다. 이곳에는 순례자들이 소원을 적어 남기면 나중에 온 순례자들이 그 기도를 읽어주는 전통이 있었다. 그렇게 낭독된 기도는 21일 뒤에 불태워진다. 여기서 산티아고까지 가는데 보통 21일 쯤 걸리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앞서간 이들이 남긴 기도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고 다른 사람의 기도도 내 기도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암을 낫게 해달라고 이 길을 걷고 있는 열 살짜리 소녀의 기도가 낭독되던 순간, 여기저기서 ‘어흑!’하고 울음 터지는 소리가 났다.
5. 길 걷는 사람 (200.5.22 라바날Rabanal 가는 길)
걷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작은 배낭 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그마저도 걷는 동안 하나 둘 내어버렸다. 모두들 자기가 짊어질 수 있는 만큼만 가질 수 있었다. 살던 곳에서 집이 몇 채였든 차가 몇 대였든 이곳에서 우리는 똑같이 가난했고 가진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 똑같이 길 위의 사람, 순례자일 뿐이었다.
6. 한밤 중 산티아고 성당. (2008.6.28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70일을 날을 걸어 산티아고에 닿았다. 그 사이 나는 발톱 네 개를 잃었고, 흰머리를 서른 개 쯤 얻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떨쳐냈고 내가 무척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나는 기적을 바라고 이 길을 걸었지만 내가 원하던 기적이 내가 원하던 방식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내 속의 ‘진짜 내’가 원하던 기적이 ‘진짜 내’가 원하던 방식으로 일어난 것임을. 나는, 전보다 가볍고 행복해졌다.
7. 순례자의 기도 (2008.6.29 산티아고 성당 앞. 이른 아침.)
이른 아침, 성당 앞에 도착한 순례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동안 숱하게 흘렸을 땀과 눈물, 혼자서 맞서야만 했을 통증과 괴로움, 그 모두를 이기고 걸어온 먼 길이다. 그 길의 끝에서 자신을 낮추고 무릎 꿇은 순례자의 뒷모습이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8. WANT NOTHING (2008.5.26 크루스 데 페로Cruz de Ferro 돌무덤.)
사람들은 이 돌무덤에다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놓고 소원을 빌면서 새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그런데 이 많은 돌무더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메시지는 바로 ‘바랄 것이 없나이다’라는 고백이었다. 바랄 것이 없다, 이미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황홀한 고백인지!